환경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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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댓글 0건 조회 8,882회 작성일 13-02-16 18:03본문
환경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대
이용성 (환경보전교육센터 소장)
현재까지의 환경교육은 미래세대를 위한 ‘세대간의 형평성’과 ‘생태적 감수성 증진’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자연에서의 체험’만을 중요시 했던 기존의 환경교육이 이제는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초기 환경교육이 태동하던 시절의 환경문제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환경문제 범주가 달라지는 만큼 환경교육의 의미와 인식, 그리고 영역은 확대되어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지구가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학계의 논문이 아닌 현실화 되고 있다. 미국의 엘 고어(전 대선 후보)가 제작한 다큐영화 ‘불편한 진실’에서는 인간이 무분별하게 사용한 탄소 에너지가 이제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태계 전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체제와 인간의 환경 불감증이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그 동안의 환경문제의 범주가 공해와 산성비, 에너지와 발전소, 물과 수질오염, 무분별한 개발 등이었다면, 이제는 지구 생태계 전체를 순식간에 죽음에 길로 인도할 기후변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천국의 아름다움’을 담은 섬이라 칭하는 몰디브의 수몰위기도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환경문제는 인류가 생각했지 못한 부분까지 영역을 확장해 가며 전체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한가운데 인간이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류의 영장이라 칭하면서 지구의 모든 자연환경을 개발하고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환경문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철학과 윤리가 있었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학교에 사회에서 그 철학과 윤리를 배우고 실천한다. 하기에 인간이 중심이 아닌 자연의 순리에 인간사회를 포함했던 노장사상(무위자연)과 같은 철학이 현대 사회에 필요하다. 이와 같은 것을 환경철학이라 하고 환경철학을 바탕으로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윤리관을 환경윤리라 한다. 사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환경윤리를 실천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의 문명에 길들여지기 전 우리의 예전 모습을 보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작은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사용하고 뜨거운 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던 점, 집안에서 발생한 인분을 다시 농사에 활용했던 점, 밭에 콩을 심을 때도 새가 먹을 콩, 벌레가 먹을 콩, 사람이 먹을 콩 이렇게 3개의 콩을 심었던 점 등에서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스스로 환경윤리를 실천했던 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환경윤리와 실천은 생활 속에서 스스로 행해지는 것이다.
환경교육은 환경윤리를 실천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생명을 직접 접하고 환경문제를 직접 체험함으로서 얻어지는 감흥은 바로 스스로가 만드는 환경철학이 되고 환경보전과 실천을 위한 밑걸음이 된다. 방송국에서 수천만원, 수억원을 들여서 제작하는 환경보전 공익광고보다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현장에서 진행하는 환경교육인 것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환경규제와 환경관련 법도 환경보전과 환경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환경교육의 효과를 따라올 수는 없는 것이다. 환경교육은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인 인간 스스로가 환경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철학적 윤리적 배경을 만들어가는 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교육이 근래 들어 여러 영역에서 반영되고 있다. 교육적 차원을 높이고자 진행되는 학교환경교육과 사회교육 차원에서 진행되는 평생교육,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체험학습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영역에서 진행되는 환경교육은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어떻게든 환경교육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고, 가장 큰 단점은 환경교육이 그 각 영역에서 하나의 카테고리의 기능만 한다는 것이다. 환경교육이 하나의 소재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환경교육이 가지는 위상에 있다. 환경교육의 위상은 환경교육을 진행하는 목적과 환경교육이 가지는 기능에 초점을 맞춰서 세워져야 한다. 환경교육은 어떠한 기능을 습득하기 위한 과정도 아니고 체험을 전제로 한 놀이도 아니다. 환경교육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 즉, 지구의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데 있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라는 점을 범지구적, 범사회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실천을 하는 사회적 의무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환경교육을 통한 환경실천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이 지켜야 될 의무인 것이다.
지구상에 나타나고 있는 환경문제의 해결은 이제 모든 생명체의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문제는 해수면의 상승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섬들이 물에 잠기는 것은 지구온난화가 가져오는 작은 시작일 뿐이다. 빙하가 녹고, 바다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가져올 재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피해는 줄어 들 수 있다. 교토의정서와 같이 탄소배출에 관한 국제적/국가적 규제도 필요하지만,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들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환경교육은 그걸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자 인간이 가지고 있는 환경지배주의를 깰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이다.
지금은 환경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환경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인식, 현장에서 환경교육을 진행하는 단체/활동가의 인식, 그리고 환경문제에 대한 범국민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환경교육은 단순한 자연체험이나 감수성 증진, 그리고 교과목 중 하나, 평생학습 중 하나의 작은 의미가 아닌 지구환경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되어야 한다.
2007년 7월. 환경일보
이용성 (환경보전교육센터 소장)
현재까지의 환경교육은 미래세대를 위한 ‘세대간의 형평성’과 ‘생태적 감수성 증진’에 초점을 맞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순히 ‘자연에서의 체험’만을 중요시 했던 기존의 환경교육이 이제는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초기 환경교육이 태동하던 시절의 환경문제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환경문제 범주가 달라지는 만큼 환경교육의 의미와 인식, 그리고 영역은 확대되어야 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으로 지구가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학계의 논문이 아닌 현실화 되고 있다. 미국의 엘 고어(전 대선 후보)가 제작한 다큐영화 ‘불편한 진실’에서는 인간이 무분별하게 사용한 탄소 에너지가 이제 인간을 포함한 지구 생태계 전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체제와 인간의 환경 불감증이 가져온 결과인 것이다. 그 동안의 환경문제의 범주가 공해와 산성비, 에너지와 발전소, 물과 수질오염, 무분별한 개발 등이었다면, 이제는 지구 생태계 전체를 순식간에 죽음에 길로 인도할 기후변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천국의 아름다움’을 담은 섬이라 칭하는 몰디브의 수몰위기도 지구온난화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환경문제는 인류가 생각했지 못한 부분까지 영역을 확장해 가며 전체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한가운데 인간이 있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류의 영장이라 칭하면서 지구의 모든 자연환경을 개발하고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환경문제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인간을 중심으로 한 철학과 윤리가 있었다.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학교에 사회에서 그 철학과 윤리를 배우고 실천한다. 하기에 인간이 중심이 아닌 자연의 순리에 인간사회를 포함했던 노장사상(무위자연)과 같은 철학이 현대 사회에 필요하다. 이와 같은 것을 환경철학이라 하고 환경철학을 바탕으로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윤리관을 환경윤리라 한다. 사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환경윤리를 실천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구의 문명에 길들여지기 전 우리의 예전 모습을 보면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작은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을 사용하고 뜨거운 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았던 점, 집안에서 발생한 인분을 다시 농사에 활용했던 점, 밭에 콩을 심을 때도 새가 먹을 콩, 벌레가 먹을 콩, 사람이 먹을 콩 이렇게 3개의 콩을 심었던 점 등에서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스스로 환경윤리를 실천했던 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렇듯 환경윤리와 실천은 생활 속에서 스스로 행해지는 것이다.
환경교육은 환경윤리를 실천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살아있는 생명을 직접 접하고 환경문제를 직접 체험함으로서 얻어지는 감흥은 바로 스스로가 만드는 환경철학이 되고 환경보전과 실천을 위한 밑걸음이 된다. 방송국에서 수천만원, 수억원을 들여서 제작하는 환경보전 공익광고보다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현장에서 진행하는 환경교육인 것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환경규제와 환경관련 법도 환경보전과 환경실천을 목적으로 하는 환경교육의 효과를 따라올 수는 없는 것이다. 환경교육은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인 인간 스스로가 환경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문제해결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철학적 윤리적 배경을 만들어가는 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환경교육이 근래 들어 여러 영역에서 반영되고 있다. 교육적 차원을 높이고자 진행되는 학교환경교육과 사회교육 차원에서 진행되는 평생교육, 그리고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체험학습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이 여러 영역에서 진행되는 환경교육은 각기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어떻게든 환경교육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고, 가장 큰 단점은 환경교육이 그 각 영역에서 하나의 카테고리의 기능만 한다는 것이다. 환경교육이 하나의 소재로 전락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근본적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환경교육이 가지는 위상에 있다. 환경교육의 위상은 환경교육을 진행하는 목적과 환경교육이 가지는 기능에 초점을 맞춰서 세워져야 한다. 환경교육은 어떠한 기능을 습득하기 위한 과정도 아니고 체험을 전제로 한 놀이도 아니다. 환경교육은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 즉, 지구의 생태계를 지속가능하게 유지하는 데 있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라는 점을 범지구적, 범사회적으로 인식하고 그에 맞는 실천을 하는 사회적 의무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환경교육을 통한 환경실천은 지구상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가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간이 지켜야 될 의무인 것이다.
지구상에 나타나고 있는 환경문제의 해결은 이제 모든 생명체의 생존권과 직결되어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문제는 해수면의 상승에만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섬들이 물에 잠기는 것은 지구온난화가 가져오는 작은 시작일 뿐이다. 빙하가 녹고, 바다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가져올 재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일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피해는 줄어 들 수 있다. 교토의정서와 같이 탄소배출에 관한 국제적/국가적 규제도 필요하지만,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환경문제 해결을 위한 스스로의 노력들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환경교육은 그걸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자 인간이 가지고 있는 환경지배주의를 깰 수 있는 근본적 해결책이다.
지금은 환경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환경교육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인식, 현장에서 환경교육을 진행하는 단체/활동가의 인식, 그리고 환경문제에 대한 범국민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이제 환경교육은 단순한 자연체험이나 감수성 증진, 그리고 교과목 중 하나, 평생학습 중 하나의 작은 의미가 아닌 지구환경을 살리기 위한 노력의 가장 효과적인 정책이 되어야 한다.
2007년 7월. 환경일보